공직이야기

숙직근무

네남매아빠~ 2013. 12. 30.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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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한달이나 두달에 한번 당직근무가 돌아온다.

당직근무는 공휴일 낮(9:00 ~ 18:00)에 근무하는 일직과 주중 및 공휴일 밤(18:00 ~ 9:00)에 근무하는 숙직으로 나뉜다. 보통 낮에 서는 일직근무는 여자직원들이 서고, 밤에 서는 숙직근무는 남자직원들이 선다.

 

공휴일이나 밤이면 민원전화가 없을것 같지만 재수없는 날은 당직시간내내 전화벨이 울려된다. 무슨 불편민원이 그리도 많은지 민원전화가 접수되면 대부분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하여 민원사항을 안내하는 것으로 끝내기도 하지만 퇴근시간 이후나 공휴일에 담당자가 연락이 되지 않을때는 가끔 난감한 경우도 더러 있다.

 

돌발적인 사항이 아닌 일반적인 민원의 경우는 직원들이 근무하는 낮시간대에 전화하여 처리하면 좋은텐데 굳이 담당직원이 없는 밤이나 공휴일에 전화하여 민원처리를 요구하는 분들을 보면 조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오늘밤 숙직근무에 걸려 17시 45분쯤 당직실로 출근하였고 18시가 되기도 전에 욕쟁이 할머니의 민원전화로 숙직을 시작했다. 낮이고 밤이고 분간없이 당직근무시 하루 한 번씩 꼭 전화하는 할머니인데, 전화를 받자마자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을 내는 사람으로 처음 전화를 받는 당직자는 조금 당황할 수 도 있다.

 

근무시작과 동시에 한 바가지의 욕을 먹고나니 오늘밤이 유난히 길어질것 같은 예감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7시쯤 관내 읍지역 파출소로부터 행려자를 모시고 오겠다는 전화가 왔고 한 시간 뒤쯤 경찰차가 당직실 앞으로 술에 취한 노인 한 분을 모시고 왔다. 인계서를 작성해서 오긴 했는데 행려자 인적사항란이 모두 불상이다.

 

파출소에서도 노력은 했겠지만 왠지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경찰차에서 혼자 내리지도 못하는 노인을 경찰직원과 함께 부축하여 당직실 방으로 옮겨 재우려고 했지만 노인상태가 위태로워보여 밤에 자다가 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여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였고 다행히 연락이 돼서 담당자를 통해 근처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119구급대를 통해 근처 시내에 있는 중앙병원으로 이동하면서 담당자와 함께 병원을 따라갔고 여러가지 일을 경험해본다. 신원불상은 병원입원뿐만 아니라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병원관계자 말에 담당자분은 경찰서 광역수사대에 지문조회를 의뢰하였고, 광역수사대에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곧 해당 파출소로부터 광역수사대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행려자 가족이 경찰서에 신고접수 후 행려자 사진을 확인하여 가족임을 확인한 뒤 노인분을 모시러 병원으로 출발했다는 내용이었다. 광역수사대 직원들은 돌아가고 담당자분과 병원에서 노인 가족들을 기다려 만난 후 노인분을 인계한 후 담당자분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다시 당직실로 돌아오니 10시가 좀 넘고 있다. 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연세가 90세가 넘었고 8년전부터 알콜성 치매로 오늘처럼 집을 나가시는 경우가 많고 가족들도 많이 지쳐서 막내아들인 자기가 모시고 있다고... 참 안타까운 일이 내 주변에도 많은것 같다. 

 

오늘 행려자 처리시 아쉬운 점은 가족분들의 말에 의하면 해당파출소에서 노인을 집까지 모셔다 주신적도 있다는데 오늘은 어떻게 시청으로 모시고 왔는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지문조회 등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쉽게 가족을 찾아 집으로 바로 모셔다 드릴 수 있는 것을, 시청, 병원, 행려자, 보호자 모두 불편하지 않았을텐데. 그 점이 좀 아쉽다.

 

이번 일을 통해 사회복지 파트에 남자직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고, 행려자 발생시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있고 응급조치가 가능한 병원이나 안전하게 잠을 재우거나 쉴 수 있는 쉼터 등의 지정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어느 시청 당직실에서 행려자를 재웠다가 사망한 사건으로 시끄러운 일이 있었는데, 행려자 발생시마다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는 숙직자가 숙직실에 재운다는 것은 행려자 본인뿐만 아니라 숙직자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해당 부서에서의 임시방편적 조치가 아닌 근본적인 조치가 반드시 필요할듯하다.